일상 8/28/2026

“But with his increasing wealth comes greed and impatience. Unable to wait day after for the golden eggs, the farmer decides he will kill the goose and get them all at once.” (The 7 Habits of Highly Effective People/ page 53)

많이 들었던 인용이 오늘따라 나로하여금 생각을 하게 했다. 우리 인간에게는 탐욕이 깊이 내제되어 있는데 어떠한 상황을 만나면 그 탐욕이 절재되지 않고 그 탐욕의 강도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곧, 어떤 소유가 주어지면 시간이 지나면서 그 소유에 만족하기 보다 더 많은 소유를 원하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위 예화에서 보여 주는 것 처럼 말이다.

그러면 그 내제되어 있던 탐욕이 일어나는 시점은 어디서 부터 일까? 아마도 그 시작은 나 중심적인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내가 더 많이 소유해야 하고, 내가 더 우위여야 하는 나의 욕망에서 시작되는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내면에 있는 탐욕은?

이 책에 작가는 황금알에 거위를 물질적 자산과 금융자산, 인간적자산으로 설명하고 있다. 거위를 잘 돌보면 계속 황금알을 얻을 수 있지만 거위를 혹사하거 죽이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교훈인 것이다.

The 7 Habits of Highly Effective People

They are also habits of effectiveness because they are based on a paradigm of effectiveness that is in harmony with a natural law, a principle I call the “P/PC Balance,” which many people break themselves against. This principle can be easily understood by remembering Aesop’s fable of the goose and the golden egg.

The fable is the story of a poor farmer who one day discovers in the nest of his pet goose a glittering golden egg. At first, he thinks it must be some kind of trick. But as he starts to throw the egg aside, he has second thought and takes it in to be appraised instead.

“효과성: 균형, 많은 사람들이 원칙을 어기고 스스로 어려움을 겪는 것?, 원칙을 지키는 것은 나를 규칙에 얽매이게도 하지만 원칙을 따라 가므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길이도 하며, 익숙한 것에 대한 생산성을 높이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다. 반면 반복적인 규칙을 따라가며 빠지게 되는 단순성, 현실안주, 더 나아가서는 Narcissist(NPD;나르시즘 장애)로 빠질 수 있는 위험도 존재한다고 본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사고로 나가기 위해서는 전방위적인 “발란스”를 지키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일상 8/20/2026

8월 18일 화요일

요나서를 묵상하다 나에기 신성한 충격을 주는 부분을 만났다. 하나님께 불순종한 요나가 바다에 던저져 고래에 배 속에서 삼일을 지내고 살아서 토함을 받았다는 전설같은 내가 기억하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아니였다.

“바가가 점점 흉융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요나서 1:11-12)

요나의 모습에서 첫째: 바다의 폭풍이 자신으로 인함이라는 정직한 인정과 대면

둘째: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선포

세째: 목숨을 내어 놓고 자신의 책임을 지는 용기

내가 이 상황을 만났다면???????????

일상

화창한 토요일 아침이다.

오늘은 오랫만에 혜정씨와 점심약속을 했다. 일여녀 만이다. 교회를 제외하고는 외부활동을 하지 않고 있었던 지난 2년, 이제는 훌훌 털고 외부와의 연결고리를 열어두어야 하는가 보다. 그동안 믿음에 동역자를 보내달라고 기도하고 있었다. 그렇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께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도록 디자인 하셨다는 것.

조금은 흥분되고 그동안 어떻게 지냈을까 하는 궁금함도 함께 가지게 된다. 오랫만에 만남에 기대가 된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유익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께 지혜와 상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세심함과 영적 분별력을 구한다. 그동안 위로 받고 싶었거나 무거웠던 마음이 있었다면 사랑의 마음으로 다독여 줄 수 있기를.

그래 이제는 하나님께서 만나라 하시는 사람들을 보내주신다면 그들을 품고 함께 용기와 삶에 활력을, 그리고 다친 마음들을 어루만지며 하나님에 도구로 사용되기를 기도한다.

 

관계에서 온유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히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태복음5:5),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태복음11:29)

위 외에도 성경에서 온유에 대하여 여러곳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온유는 성경이 아니더라도 일반적으로 인간들이 갖추어야 하는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고 있다. 온유에는 사랑, 오래참음, 배려, 이해와 양보, 용서와 같은 덕목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사랑하는 대상에게는 따로 노력을 하지 안아도 온유한 마음이 저절로 우러 나오게 된다. 그 대상을 온유함으로 대하는 사람은 그 대상에 대하여 잘못이나 실수가 있다 하더라도 질책 보다는 관용으로 덮어주게 된다. 사랑이 그 실수와 잘못을 능가하고 덮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실수를 통하여 배움의 기회를 삼을 수 있도록 기다려 준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성장할 수 있도록 용기와 지지를 아끼지 않는다. 이러한 마음자세가 온유가 아닐까 한다. 온유한 자는 자신의 유익을 과감하게 양보하는 마음이며, 다른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에게 돌아오는  손해 또는 아픔까지도 감수하는 자세가 온유를 소유한 사람의 모습일 것이다.

온유를 한 카다고리에 한정 짖는다는 것은 무리가 있겠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온유는 온유를 소유한 사람 뿐 아니라 주위사람들까지 삶을 풍요롭게 하며, 관계를 풍성하고 넉넉하게 하는 원천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풍성한 나의 삶 뿐 아니라 주위 가족들과 이웃들의 삶에 까지 풍성함을 더 할 수 있을까? 온유한 사람이 되는 것은 어떤 순간에 저절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가치관과 지향하는 방향을 손익의 계산법이 아닌 아름다운 마음과 생각으로 전환하며, 한 걸음 물러서서 넉넉한 여유를 갖는 훈련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세상이 추구하는 명예와 돈, 권력이 아니라 가진 것에 대한 감사와 나누는 진정한 기쁨을 경험한다면 온유함의 시작이 아닐까. 돈과 명예, 권력은 가지면 더 가져야 하는 속성이 있지만 감사와 나눔은 하면 할 수록 배가 되는 놀라운 힘이 있다. 이것이 성경에서 우리에게 알게하는 진리인 것이다.

우리 모두 온유를 소유하여 풍요롭고 아름다운 관계를 맺고 살아보고자 고민 해 보는 시간이였으면 좋겠다.

관계

그렇다, 우리들의 문제에 깊이 빠져있다 보면 주위를 둘러 볼 여유가 없어진다.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대면할 수 없기 때문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질 수 밖에 없게 된다.

공감

공감은 관계에서 거리를 좁혀주고 막혀있는 담을 허물게 하는 중요한 역활을 한다.

평소에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나를 공감해 주고 지지해 주는 계기가 있게 되면 그러한 불편함은 사라지고 서로에게 공유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되는 경우를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공감은 공유와도 연결이 되기 때문에 관계에서 중요한 촉매역활를 하게 된다. 공감 역시 상대방의 관심사를 이해하고 존중할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자신의 아픈 상처를 드러내고 있다면 그 아픔의 척도와 강도를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어야 공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형식적이거나 부적절한 공감의 흉내, 이해한 척 하는 공감, 부정확한 공감은 오히려 관계를 어렵게 하고 상대로부터 신뢰를 잃게 한다. 관계에 도움을 주는 공감은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하고, 상대를 깊이 이해할 때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공유하는 공감은 상대방을 향한 편견이나 충고, 정죄하는 마음이 없어야 한다. 공감은 내가 누구로부터 이해받고 있다는 안도감을 주기 때문에 관계에서 가장 쉽게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는 초석이 되는 것이다. “인간을 수용하고 인정하며 이해하게 해 주는 공감은 우리가 다 알고 소중히 여기듯이, 그것이 없으면 인간의 생존이 불가능한 심리적인 영양소이다(Kohut,1978,p.705).” 라고 했다. 이처럼 심리학자들은 공감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심리적 영향력을 중요하게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관계에서 언어와 말의 중요성

관계의 요소중에서 대화는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대화를 통하여 서로의 의사를 전달하고, 느낌과 필요를 표현하기도 한다. 자신을 표현하는 것 뿐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 또한 아주 중요한 대화의 요소이다. 대화에서 자칫 듣는 것을 소홀히 하기 쉽다. 많은 사람들이 듣는 것을 어려워 한다. 관계를 잘 맺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듣기를 잘 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듣기를 잘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을 때 가능하다. 상대방이 지금 어떤 어려운 문제에 봉착해 있지는 않는지?, 지금 나에게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무엇인지? 가지고 있는 아픔을 누군가에게 위로받기를 원하고 있지는 않는지? 등의 상대방을 살피는 마음이 있을 때 경청을 하게 된다.

둘째는 상대를 인정하고 존경하는 마움이 있을 때 가능하다. 상대방을 나보다 낫게 여김으로 다른사람들을 깊이 관찰하며 그들의 말들을 귀담아 들을 수 있다. 상대방을 소홀히 여기는 마음이 있다면 그가 하는 말을 깊이 있게 듣거나 관심을 갖을 수 없게 된다.

세째는 나에게 긍정적 사고가 있어야 한다. 긍정적 사고는 나의 생각과 가치관이 다른 상대방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에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긍정적 사고는 상대방의 다름에 대하여 가치관을 부여하고 칭찬과 격려를 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며, 다른 사람들의 사고를  관심을 가지고 듣게 되는 것이다.

이외에도 비언어적인 메시지를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 상대방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대화를 듣다보면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비언어적인 메시지가 있다는 것이다. 대화중에 자세, 얼굴표정, 몸의 움직임, 목소리의 높낮이와 같은 세밀한 변화를 관찰할 수 있어야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무언의 메시지를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